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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카 다마츠쿠리(玉造), 모리노미야 (森ノ宮) 이야기1
    바다넘어 일본 (간사이) 2023. 2. 27.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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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이야기의 장소는 다마츠쿠리, 모리노미야 주변으로 오사카성에서도 가까우며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활기 넘지는 지역입니다. 오사카의 역사는 물을 기원으로 시작합니다. 아주 오래전 오사카성 주변은 전부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에마치다이(上町台地)지역은 육지였습니다. 

    약6000년~5500년전 오사카 지형

    그 때문에 당시 우에마치대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최초 오사카 토착민이라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곳 다마츠쿠리와 모리노미야는 우에마치대지에 있기 때문에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모리노미야 유적에서 조몬인의 뼈 등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에 들어가면서 큰 마을로 발전하였고 메이지 시대가 되어 포병 공장과 피복공장 등 군수공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마을로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전쟁 공습으로 마을을 큰 피해를 받고 1960년대에 군수공장 부지는 주택단지가 건설되어 정리된 토지에 주택과 생활 관련 시설들이 만들어져 지금의 다마츠쿠리, 모리노미야가 된 것입니다. 다마츠쿠리(玉造)라 함은 말 그대로 구슬을 만든다는 뜻을 지닌 마을로 옛날부터 곡옥 등을 제작하는 옥작부(玉作部)가 이 땅에 놓여 있었던 것이 지명의 유래로 여겨집니다.

    현재 오사카성,모리노미야역, 다마츠쿠리역 위치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오사카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옛길 몇 개가 이곳을 경유해 나라(奈良), 야오(八尾), 시기산(信貴山) 방면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모리노미야(森ノ宮)는 원래 오사카성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이쿠쿠니다마신사(生國魂神社)의 동쪽에 숲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신사의 다른 이름으로 난바대사(難波大社)또는 난바의 숲(難波森)으로 불렸으나 598년 신라(新羅)에서 가져온 까치(鵲)(カササギ)를 숲에서 사육하여 가사사기노모리(鵲の森), 줄여서 가모리(鵲森)라 불렸습니다. 같은 시기에 일본 왕인 쇼토쿠태자(聖徳太子)가 선대를 기리는 가모리노미야(鵲森宮)궁을 당지에 지어 신사의 명칭이 모리노미야(森ノ宮)로 명명이 된 유례가 있습니다.

     

     

     

     

    산코신사(社)

    산코신사는 약 160년 전에 지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이 일대에는 오사카성 남쪽 앞에 축성한 외성곽 '사나다마루'(真田丸)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 센고쿠 시대의 전설적인 무장인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와 관계있는 곳으로 옛날부터 많은 사람에게 관심받는 곳입니다.

    산코신사 입구

    도요토미와 도쿠가와의 전쟁 중 도요토미의 오사카성의 동, 서, 북쪽은 성보다 낮은 곳이라 방어하기 용이하지만 오사카성의 남쪽 지역은 지대가 같아서 방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남쪽의 방어를 두껍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오사카 겨울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기지로 사나다마루(真田丸) 외곽성을 축성하였던 장소가 이곳 산코신사(三光神社)입니다.

    2016년 방영한 NHK대하드라마 '사나다마루'

    여기서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자면 도요코미 쪽의 무장으로 도쿠가와의 본진까지 과감하게 공격할 정도의 활약에 일본 제일의 무장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사나다 가문의 가몬은 유명하며  육문전(六文銭)으로 불리는데 죽은 사람을 장례 할 때 관에 넣은 육문의 동전을 의미하여 언제 어디서라도 죽음을 가리지 않는 불신신명(不惜身命)의 결의로 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도쿠가와가 화해의 조건 중 하나가 사나다마루(真田丸)를 없애라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산코신사엔 오사카성에서 이곳을 통했다고 전해지는 유명한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산코신사 안에 사나다 유키무라와 비밀통로

    이 비밀통로의 이름은 한자 그대로 직역하면 사나다의 빠져나갈 구멍 (真田の抜け穴), 이 비밀 통로는 여러 가지 사용설이 있는데 하나는 도요토미가 사나다마루(真田丸)와의 연락망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설과 반대로 도쿠가와가 오사카성 내부로 침투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소문이 있습니다.

     

     

     

     

    타마츠쿠리 이나리신사(玉造稲荷神社)

    타마츠쿠리이나리신사는 기원전 12년 가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매우 오래된 신사입니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시대에는 오사카성의 수호신 같은 의미로 숭경(崇敬) 받았다고 알려진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는 신사라고 합니다.

    타마츠쿠리 이나리신사 입구

    지금의 다마츠쿠리이나리신사는 에도시대의 본전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이 신사의 다마츠쿠리(玉造)의 지명의 유래는 여기서 마가타마(曲玉)'곡옥'이라는 고대 장신구의 하나인 구부러진 옥돌을 가공하는 장인들이 곡옥을 생산하는 기술 집단의 거주지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여기서 잠깐 곡옥에 대해 알아보자면 곡옥 문화는 한국과 일본, 북한의 일부에 존재하고 있고 세계의 구슬 문화 중에서도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고 권력의 상징과 부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타마츠쿠리 옥조 자료관

    성씨제도(氏姓制度)가 정돈된 4세기 무렵부터 다마츠쿠리(玉造)라는 이름이 불리는 것처럼 곡옥(曲玉)의 역사 등을 볼 수 있는 자료관이 있지만 예약제이므로 충분한 시간과 관심이 있는 분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신사의 바깥쪽에는 이 지역의 역사에 기록돼있는 작은 야채밭이 있습니다. 나니와의 전통 야채인 타마츠쿠리쿠로몬시로우리(玉造黒門越瓜)는 옛날부터 신사 주변에 많은 밭에서 재배되어 왔습니다. 이름의 유래는 고대 월나라(越の国) 현재 베트남에서 전해졌기 때문에 월(越)이라고 쓰고 '시로'라고 읽으며 오사카성에 있는 쿠로몬(黒門)이라 불리는 옥조문(玉造門) 근처에서 야채를 키워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집니다. 

    타마츠쿠리쿠로몬시로우리 기념비

    보통 이 야채로 절임(漬物)으로 즐겨 먹었다고 합니다. 옛날 신사는 높은 곳에 있어 교토에 있는 기요미즈데라의 무대가 타마츠쿠리이나리신사 동쪽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대가 낮은 동쪽의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신사였습니다만 지금은 병란과 전쟁 공습 등에 의해 소실되어 현재의 신사로 남아있습니다.

     

     

     

     

     

    타마츠쿠리히노데클럽(玉造日之出倶楽部)

    타마츠쿠리히노데도리 상점가(玉造日之出通商店街)에 있는 오사카에서 가장 오래된 당구장이라고 합니다. 매장 안에는 오래된 매장답게 레트로한 소품들로 인테리어 되어있습니다. 옛날엔 타마츠키바(玉突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타마츠쿠리히노데클럽 앞

    옛날 근처에 포병공창(砲兵工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근무자들이 나라역(奈良駅)에서 기차를 타고 츠루하시역(鶴橋駅)에 내려 모리노미야(森ノ宮) 포병공창 근무지까지 타마츠쿠리히노데도리 상점가를 지나다녔다고 합니다. 

    타마츠쿠리히노데도리 상점가 모습

    전쟁 전부터 많은 사람이 찾는 매우 활기찬 상점가 거리라 '동쪽의 신사이바시'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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