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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나카노시마 (中之島) 이야기1바다넘어 일본 (간사이) 2023. 1. 27. 17:55반응형
오사카 중심부에 위치한 섬이 있습니다. 현재는 중심업무지구이자, 공공기관, 미술관 공원 등 비즈니스뿐 아니라 문화, 예술거점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나카노시마 섬이 생겨난 이유는 오래된 퇴적작용으로 자연히 생긴 섬입니다.
강은 상류에 물살에서 지속해서 퇴적물이 흘러내립니다. 점점 물살이 약해지면서 상류에서 흘러 내려온 토사가 강의 한가운데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섬이 생겨난 것이 바로 현재의 나카노시마가 되었습니다. 나카노시마라는 지명은 오사카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있으며 그 대부분은 후쿠오카현에 있는 나카스의 지형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요도야바시(淀屋橋)
우선 나카노시마와 가까이 있는 요도야바시 다리를 알아보겠습니다. 요도야바시다리남서쪽에는 요도야의 저택 흔적의 비석이 있습니다. 요도야의 역사로 역대 당주나 당시의 번역의 모습 등이 적혀있습니다. 옛날에 '요도야'(淀屋)의 이름에 장사수완이 좋은 대상인이 개인 돈으로 다리를 건설했다 하여 요도야바시라 이름을 딴 것입니다.
요도야란 사람은 원래는 목재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장사하는 상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요토미와 도쿠가와가 서로 전쟁하는 시대에 요도야는 촉이 좋아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섰습니다. 그런 사람이 센다이 지방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쿠가와이야에스에게 신뢰를 얻은 요도야는 나카노시마의 개척을 원했습니다. 오사카에 점거한 이후 중직을 임명받아 나카노시마의 개척사업에 전력하였습니다. 나카노시와의 개척을 진행하게 해 에도 시대 당시 물류, 상업의 중심지였던 오사카를 '천하의 부엌'이라 부르게 만든 오사카의 초석을 쌓은 요도야바시 초대장이었다. 하지만 오도야 5대째에 인물이 사치로 재산을 탕진하여 막부에서 재산을 몰수해 버려 현재의 요도야란 존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당시의 다리는 1885년(메이지 18년)의 대홍수로 인해 유실되었습니다.
현재의 다리는 1922년(다이쇼 11년)부터 시작된 제1차 도시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공모하여 1935년(쇼와 10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오사카시에서 실시한 다리에 관한 의식 조사 결과에서 디자인이 굉장히 뛰어나 주변 환경과도 조화를 이룬다는 이유로 오사카 시민에게 제일 매력적인 다리로 선정된 다리이기도 합니다.
스이쇼바시(水晶橋)
스이쇼바시는 정확하게 말하면 다리는 아니었습니다. 이 다리는 본래는 1929년(쇼와 4년)에 완성되어 물의 양, 높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장치를 결합한 둑으로 하천 정화를 목적으로 건설된 도지마가와 가동제로서 건설되었습니다.
축조 후 1982년(쇼와 57년) 세월에 손상되면서 금이 가거나 외관의 물때 등의 오염 등으로 눈에 띄게 되었기 때문에 재정비가 행해져, 스이쇼바시, 우리말로 번역하면 수정 다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에 다리가 되었습니다. 스이쇼바시 이름의 유래는 다리 상의 조명등이 수면에 비쳐 그 모습이 수정의 빛과 비슷하기 때문에, 혹은 수도 오사카의 번창을 바라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본체의 아치와 그 위의 9개의 작은 아치의 조합이 중후함 속에도 경쾌함을 느끼게 하는 것 외에 다리 위에는 재배나 벤치가 설치되어 느긋한 공간으로 되어 있다.
오사카시 중앙 공회당 (大阪市中央公会堂)
중앙공회당은 1916년부터 1918년 사이에 빨간 벽돌로 지어진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입니다. 나카노시마 지역의 상징 건물이며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건물을 수리하는 4년간의 복원 프로젝트를 거쳐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수리 또는 새것으로 교체되었고 일본 신화에 따라 우주의 창조를 묘사한 드라마틱한 천정에 '천지개벽' 그림도 복원되어 2002년 11월에 재개장하였습니다.
나카노시마에 개인의 기부로 1918년(다이쇼 7년)에 완성된 오사카시 중앙공회당입니다. 이와모토 에이노스케(岩本栄之助)란 사업가가 놀라운 경제 활동으로 큰 부자가 되어 자신의 사채를 털어 중앙 공화당 건물을 세운 것입니다. 당시의 금액으로 약 100만 엔 지금의 돈으로 환산해 보면 우리나라돈으로 대략 500억 정도를 기부했습니다. 하지만 이와모토 에이노스케는 건물이 완성을 못 보고 사망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주식에 막대한 손실을 보고 39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건물이 세워져 역사적으로 남아있습니다. 한 세기를 가까이 각 분야에 저명한 사람의 콘서트, 강연회 등 개최되었고 오사카 문화예술의 발전에 깊게 관여된 건물입니다. 2002년에는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도 오사카 시민들의 활동 거점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현재 중앙공회당은 2개의 콘서트홀과 클래식과 모던의 조화를 이룬 인테리어 레스토랑 'AWAKE'에서 양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중앙 공회당의 명물인 오므라이스가 런치 메뉴로 유명합니다. 현 레스토랑은 10년도 안 됐지만 그전에도 레스토랑은 대대로 이어져 왔습니다. 여기서 영업을 하는 조건의 하나가 반드시 메뉴에 오므라이스를 넣어야 하는 재미난 조건이 있었습니다.
타미노바시(田簑橋) 문어 소나무(蛸の松)
나카노시마 중심에서 서쪽에 위치한 타미노바시란 다리가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가면 모르겠지만 다리 옆에는 문어 소나무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나뭇가지가 뻗은 모양이 문어가 헤엄치는 모양과 닮아서 문어 소나무라 이름으로 지어졌습니다. 이곳은 유서가 깊은 곳으로 주변에는 쿠라야시키(蔵屋敷)라 불리는 창고 저택이 강변을 따라 많이 세워졌었습니다.
소나무를 이곳에 심은 이유는 일렬로 늘어서 있는 창고저택 앞에 소나무를 심어지면 저택의 흰 벽과 수면에 비치는 소나무의 풍경을 즐겼다고 전해집니다. 게이초(慶長)시대에 당시 히로시마 번주,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 소나무는 타미노바시 옆에서 문어 소나무란 이름의 명소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도지마 쌀시장(堂島米市場)
나카노시마가든 브리지 다리를 건너면 기념 석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도지마 쌀 시장터를 기념하여 2018년 만든 조형물이 있는데 노출 콘크리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디자인한 '한 알갱이의 빛'이란 작품입니다. 기념비는 무게는 약 9.5톤 최대 길이는 약 3미터, 직경은 약 1.5미터의 큰 화강암을 쌀알 형태로 잘라 가공하여 전시되었습니다. 옛날 에도 시대 초기 요도야가 기타하마의 노상에서 장사를 시초로 교통에 방해가 되어 1697년경 도지마에서 옮겨졌다. 나카노시마에 개발과 함께 떨어져 나가 도시마에 이전하여 오사카에서의 쌀거래의 중심지였던 도지마 쌀시장이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도지마 쌀시장은 유별난 상업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보통은 현재 있는 상품을 사고팔고 하지만 도지마 쌀시장은 아직 쌀을 수확하지 않았을 때도 그해 가을의 수확량이 얼마나 되는지 수개월 전에 예상하여 선물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지마 쌀시장의 시세는 전국의 미 시세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곧 일본의 거래소의기원이 됨과 동시에 조직적인 선물거래소의 선구자로 알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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